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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자 : `시각`을 통해 본 근대적 주체의 탄생

2002.1.24

조나단 크래리의 [관찰자의 기술 -19세기의 시각과 근대성] 서평

서론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 시각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푸코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시각의 역사를 서술해 가는 크래리의 모습은 여러모로 푸코적이다.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단절’에 중점을 두는 것도 그러하고, 시각의 형성을 통해 어떻게 인간이 새로운 주체로 만들어지는가(주체효과)를 치밀하게 묘사해 가는 것도 그러하고, 마지막으로 그 무엇보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좀처럼 모르겠다는 면에서 그러하다.

시각은 주체와 대상을 매개하는 하나의 장치인데, 그 무엇보다 여기에서는 주체와 대상의 관계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적절한 척도로 인정받는다. ‘시각’은 간단히 말해 ‘눈이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이다. 눈은 인간의 내부와 그 외부를 연결해주는 창문이며, 객관성과 주관성 사이에서 배회하는 중간자적 존재이다. 눈의 이 중간자적 모호함은 ‘시각’에 대한 입장정리를 통해 ‘객관성의 근거’나 ‘주관성의 구현자’ 등과 같은 일정한 한계를 지닌 개념(즉 쓸모있는 단어)이 되며, 상대적으로 명확한 형태를 지니게 된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은, 이와 같이 눈에게 명확한 형태를 부여해주는 ‘시각의 입장정리’가 역사적으로 어떻게 변화해 왔었는가 이다.

1. 19세기 – 시각의 재구성

크래리는 자신이 이 책에서 설명하고자 하는 것을 “19세기 전반기에 이루어진 시각의 재구성(p13)”이라 지칭한다. 시각의 역사는 전통적으로 회화나 사진의 역사를 구성하는 한 부분으로 존재해 왔다. 지금까지 근대화 과정에서 나타난 시각의 재구성을 논할 때 주된 화두가 되어왔던 것은 “1870년대와 1880년대의 모더니스트 시각 예술과 문화(p15)”이었으며, 이 예술과 문화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받아왔다.

(인용문) 마네, 인상주의 혹은 후기 인상주의와 더불어 시각적 재현과 인지의 새로운 모델이 출현하였는데, 이것은 대략 르네상스적, 투시법적, 규범적이라 정의할 수 있는 수세기에 걸친 다른 시각 모델과는 단절된 것이다. 대부분의 현대 시각문화 이론은 여전히 이 “단절”의 몇 가지 다른 버전에 불과하다.(p15)

인상주의의 단절이 더욱 빛났던 이유는, 1839년 이후 사진의 발전이 15세기이래 시각을 구축해온 일반적 사실주의를 더욱 견고하고 대중적인 것으로 자리잡게 했기 때문이었다. 19세기 중반에 카메라가 등장하면서 인간의 시각은 광범위하게 사실주의적인 것으로 고착되어 갔는데, 19세기 후반에 소수의 급진적 모더니스트들은 ‘시각적 재현과 인지의 새로운 모델’을 창조해 냈다 – 이것이 현재까지 19세기 시각의 단절에 대해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었던 지식이었다.

크래리는 이러한 상식을 거부하고 새로운 가설을 제시한다. 19세기에 있었던 시각의 재구성은 지금까지 사람들이 지니고 있었던 편견과는 달리 점진적인 것이 아닌 급진적인 단절이었고, 또한 그 시기도 훨씬 이전이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중적 사실주의와 소수의 모더니즘이라는 이분법에서 벗어나 이 두 현상을 하나의 거대한 단절이 가져온 두 가지 효과로 새로이 인식할 것을 제안한다. 크래리에 의하면 1839년 이후의 카메라의 발달, 1870년대 이후의 모더니즘 모두 19세기초에 일어났던 근본적인 시각의 재구성이 가져온 징후들에 속할 뿐이다. “19세기 예술과 과학간의 분리를 강조하기보다는 어떻게 그들이 지식과 실천의 맞물린 하나의 장의 두 부분이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p24)” 그렇다면 19세기초에 일어났던 근본적인 시각의 재구성이란 무엇이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먼저 단절이 일어나기 이전의 ‘시각’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아보아야 한다.

2. 카메라 옵스큐라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사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광학기구이다. 라틴어로 ‘어두운 방’이라는 뜻을 지닌 이 기구는 어두운 방의 한 벽에 작은 구멍을 뚫으면, 그 반대편 벽면에 외부세계의 상이 (거꾸로) 맺히는 것을 응용해서 만든 사생도구였다.

1500년대 후반에서 1700년대 말까지 거의 200년 동안 카메라 옵스큐라는 인간의 시각을 설명하는 지배적 패러다임으로 군림했다. 이 시기에는 물리학이 과학의 대표주자로 세계에 대한 인식을 설명해줄 수 있는 권위를 지니고 있었는데, 물리학의 한 유파인 광학은 인간의 눈을 카메라 옵스큐라와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를 지닌 기관으로 여겼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시각이 이해되고 재현되는 필수적인 장소였으며, 철학적으로 주체성의 새로운 모델이 되었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그 내부에 외부세계를 객관적으로, 그리고 순수하게 반영/재현하는 기구였다. 이는 당대의 철학자들에게 관찰자와 세상간의 관계를 정의하는데 매우 적합한 것으로 여겨졌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순수히 객관적인 세상의 조망에 대한 인간 지식을 세우고자하는 그의(인용자:데카르트)의 탐구해 부합한다.(p80)” 이 기구는 그 구조 상 외부와 내부를 명확하게 구분한다. 그리고 내부는 오로지 외부 세계의 반영/재현에 의해 진리를 보장받는다. 이러한 카메라 옵스큐라의 두가지 특성은 새로이 설정된 주체의 특성을 잘 드러내준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당시의 주체가 공유하는 두가지 특성은 “아스케시스(askesis), 즉 세상으로부터의 후퇴(p67)”와 “육체없는 주체(p69)”이다. 이를 ‘외부로부터의 분리’와 ‘내부의 순수’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시기 철학은 진리를 획득하기 위한 주체의 조건으로 ‘텅 비어있을 것’, ‘순수할 것’을 요청했다. 이는 영국의 경험론과 대륙의 합리론 모두가 공유하고 있던 주체의 조건이었다. 로크는 주체를 백지(tabula rasa)라 했다. 한편 데카르트도 빈 내부공간을 주체의 선행조건으로 이해한다.

(인용문) 데카르트에게는 “사람은 특이하게 정신의 지각을 통해” 세상을 아는데 이 때 빈 내부공간 안에 있는 자아의 안전한 위치잡기는 외부 세상을 하는 데 있어서 선행 조건이다. 카메라 옵스큐라의 공간, 그 닫혀 있음, 어두움, 외부와의 이격은 데카르트의 “나는 이제 나의 눈을 닫고, 나의 귀를 멈추고, 나의 감각을 무시할 것이다”라는 말을 구현한다.(p74)

외부로부터 완전히 분리된, 외부와 확고한 거리를 둔 – 세상으로부터 후퇴한 ‘내부’를 상정함으로써 주체는 객관적 외부를 반영할 수 있게 된다. 외부로부터 단절된 어두운 내부, 그것은 그 무엇보다 카메라 옵스큐라(어두운 방)의 내부였다. 또한 그 내부의 어둠은 오로지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한줄기 빛이 지닌 상(像)을 그대로 보존해주기 때문에 의미있는 것이다. 주체의 내부에 순수함(백지)이 요청되는 것도 외부세계를 그대로 반영하기 위해서인데, 이는 투명한 주체 – 육체 없는 주체를 의미한다. (이러한 주체는 후에 생리학과 함께 육체가 복권되면서 붕괴할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외부세계의 객관성을 주체가 반영/재현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시기의 철학은 이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과정이었고, ‘주체의 시

각이 구성되는 과정’에서 그 해답은 카메라 옵스큐라에 의해 주어졌다. “어떤 의미에서 카메라(옵스큐라)는 점점 더 증가하는 세상의 동적인 무질서 속에서 인지자가 가장 합리적일 수 있는 가능성들을 보여주는 메타포였다.(p89)”

3. 타고난 오인능력

물리학의 보호 하에서 객관적 외부를 내부에 반영하게 해주는 특권적 지위에 있었던 ‘눈’은 생리학의 발달과 함께 그 특권을 상실하고 육체의 일부로 전락하였다. 이 패러다임의 단절 사이에는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 자리잡고 있다. 칸트에 의해 경험론과 합리론이 모두 부정되고 새로운 주체가 탄생하는데, 이 칸트의 주체는 진리를 더 이상 외부세계로부터 구하지 않는다는 데에 그 참신함이 있었다. 진리의 보금자리는 외부세계가 아닌 주체 안에, ‘선험적 종합판단능력’에 있었던 것이다. 주체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인식수단/인식틀 – 이것이 진리를 가져다준다. 이제 외부공간과 내부공간의 구분은 의미가 없다. 외부세계는 ‘물자체’이며 그것은 진리 너머에 존재하는 것이다. 동시에 눈은 ‘외부세계를 반영하는 창문’이라는 기존의 의미를 상실한다. 대신 ‘육체의 한 기관’으로 ‘다양한 감각들 중 일부’로 눈은 새로운 관찰대상이 된다.

객관성의 보루였던 눈은 주관성의 광장으로 탈바꿈한다. 같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피로도에 따라 색이 다르게 보이는 것, 눈을 감은 후에도 상이 망막에 남아 있는 현상, 눈을 감은 상태에서도 진동이나 타격, 진기 등의 충격을 통해 빛과 색의 느낌들을 경험할 수 있다는 생리학적 결과물. 이와 같은 주관적인 눈의 경험이 중요한 자료로 인정받기 시작하고, 이를 통해 시각활동은 “내적 경험(p113)”, “내부 감각(p113)”으로 이해된다. 그리고 주체는 ‘객관적 외부를 재현하는 공간’이 아닌 “감각의 장소이자 생산자(p118)”가 된다. 이제 주체는 진리의 반영자이기는커녕 오판할 운명에 있는 존재이다.

뮐러는 다양한 종류의 상이한 자극이 주어진 감각 신경 내에서 동일한 느낌을 생산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다시 말하면, 그는 자극과 감각 간의 기본적으로 무작위적인 관계를 묘사하고 있다. 이것은 육체가 오인(misperceive)이라는 타고난 능력(선험적 능력이라 부를 수도 있겠다)을 가진다는, 즉 눈이 똑같은 걸 다르게 그려낸다는 주장이다.(p139:강조는 원저자)

카메라 옵스큐라는 더 이상 설자리가 없다. 주체는 주관적 오인의 능력을 통해 객관성이라는 족쇄로부터 자유로워졌다. “빛의 경험은 어떠한 고정된 기준점이나 근거, 혹은 세계가 구성되고 이해될 수 있었던 근원으로부터 분리된다. (중략) 사실상 시각은 감각들, 즉 지시체와 연결될 필요가 없고 따라서 어떠한 고정된 의미 체계도 위협하지 않는 감각들에 영향을 받는 능력으로 재정의된다.(pp140∼141)” 안과 밖의 구분은 사라지고 대신 “모든 감각적 경험은 단일한 내재적 평면(p142)”에서 일어나는 것이 되었다. 이제 모든 시각적 결과물은 주관성이 구성해 내는 자의적 산물이다.

4. 생리학적 주체효과 = 관찰자 : 정상화되고 수량화 가능한 인간의 시각모델 구축

뮐러의 주장은 진리와 객관성을 위협했다. 이러한 주관적 시각이 범람하는 상황에 조응하는 ‘새로운 객관성’이 필요했다. 이는 각각의 주관성들이 지닌 공통분모에 대한 연구를 뜻했다. 시각을 통한 인식작용을 측정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그를 통해 예측가능하고 통제가능한 것으로 만듦으로써 “정상화되고 수량화 가능한 인간의 시각모델을 구축(p147)”하려 하였다. 허바트는 “자발적 주체성에 수반된 의미와 재현의 잠재적 위기를 인식하고 그 규격화를 위한 분석틀을 제안(p157)”하였으며, 푸르키니에는 눈이 피로해지기까지 소요되는 시간, 눈동자의 확장과 수축에 소요되는 시간, 눈 움직임의 강도 등을 측정하면서 지각을 계량화하였다. “눈의 물리적 표면 그 자체가 통계적 정보의 한 영역(p160)”이 된 것이다. 지각의 계량화 과정에서 알게된 정보들은 회전판, 페나키스티스코프, 만화경, 입체경 등의 광학기기를 탄생케 했고, 이러한 광학기기들은 대중적인 오락물로 생산되어 소비되었다.

주관적 지각능력의 통계화를 통해 주체는 예측가능하고 통제가능한 자료임과 동시에 “새로운 시각적 이미지들과 정보들을 소비할 능력이 있는 관찰자(p149)”로 만들어져 갔다. 이 과정은 -푸코가 『감시와 처벌』에서 묘사한 바 있는- 권력이 근대적 주체를 형성해 나갔던 과정과 맞물려 있다. 새로운 객관성을 창출해 내부적인 감각 경험과 외부세계 간의 관계를 재확립하려는 노력은 통계화된 근대적 주체(=관찰자)의 등장으로 일단락 지어졌다. “경험적인 정확성과 기술적 중재의 영역 안에 지각과 관찰자를 재위치(p216)”시켰던 것이다. 카메라 옵스큐라를 통해 물리학적인 외부세계를 순수한 내부에 반영함으로써 진리를 생산했던 권력은, 19세기초 주관성의 범람으로 새로운 상황에 처해졌었다. “그러나 권력의 근대적 형태는 (중략) 주체를 세상으로부터 질적으로 분리된 내적 영역으로 다뤄왔던 경계를 깨뜨리며 발생했다. 근대화는 이 마지막 장소가 합리화될 것을 요구했고, 푸코가 분명히 했던 것처럼 정신(psycho-)이라는 접두어가 붙는 19세기 과학들은 모두 이런 주체성의 전략적 전유(appropriation)의 일부이다.(p221)”

결론

워낙 난해하고 복잡한 내용을 요약하려다보니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다시 한번 몇마디로 요약하고 마치고자 한다. 이 책의 의도는 19세기 초반에 있었던 시각의 재구성이 급진적이었음을 설명하는데 있다. 카메라 옵스큐라로 대변되는 이전 시대, ‘시각’은 실제세계의 반영으로서 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주체가 실제세계를 순수히 반영할만큼 단순한 것이 아님이 밝혀지면서 ‘시각’은 큰 변화를 겪는다. 그리고 그 변화는 “공평무사(indifferent)하고 환산할 수 있는 기호와 이미지들의 양산, 그리고 육체의 새로운 기능에 일치시키고자 하는 담론과 실천 이 두 영역에서 더 적합하고 자발적이고 생산적인 관찰자(p222)”의 형성과정이었다. 관찰자라는 새로운 주체성 속에 ‘시각’은 자리잡게 된 것이다. 주체성 안에 자리잡은 이러한 ‘시각’은 대립되는 것 같이 보여지는 두 가지 경로를 걷게 된다. “시각의 주권과 자발성에 대한 다중적인 확신(p222)”을 토대로 하는 모더니즘과 “점증적 표준화와 조절”을 통해 형성된 대중적 사실주의(시각의 추상화와 형식화가 창출해낸, 권력이 제시하는 표준화된 세계)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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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비평의 궤적

                                                                                                          2002.1.3

현대라는 시대, 문학이라는 대상에 대한 통찰력 있는 비평은 일정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그것은 부재하는 메타성을 향한 고통스러운 후퇴. 뒷걸음질. 마치 발터 벤야민이 말한 <역사의 천사>처럼. 그것은 뒷걸음친다는 의미에서는 후퇴이지만 전혀 새로운 영역으로 발딛는다는 의미에서는 전진이라 해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눈 앞에 현현하는 구체성은 파편화된 현실이라는 늪으로 인하여 공동담론을 구성할 힘을 잃었다. 공동담론이라는 패트론 하에서만 서식하는 비평은 -구체성이 파편성에 의해 왜소한 모습(공동담론을 구성하기에는 너무 미약한 세력)으로 변질되는 것에 비례하여 구체성으로부터 거리를 두면서-  메타적 힘을 길러 공동담론의 가능성을 개척해 간다.

궁극적인 메타의 추구는 전진이라 불릴만한 것인지도 모른다. 미지의 영역으로의 진출이자 보다 넓은 시야를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라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그러한 미지의 영역으로의 진출이 자신의 영토를 잃은 자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라면 역시 고통스러운 후퇴 또는 뒷걸음질이라 지칭하는 게 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후퇴가 명예로울 수 있는 것은 고통스러운 뒷걸음질을 통해 부재하는 논리의 영역을 열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전진이 아니라 후퇴인 것이 비평에게 있어서는 전화위복이 될 수도 있다. 유토피아라는 미리 상정한 하나의 추상적 지향점을 향한 지루한 행군이 아닌, 궁극적인 목적지가 부재한 상황에서 미지세계를 헤매면서 공통의 논리를 모색하는 의미창조의 여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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