アエラ、佐々木俊尚の「東浩紀」記事翻訳★「아즈마 히로키 – ‘근간’이 되는 세계관을 재구축하기 위해」 사사키 도시나오

「아즈마 히로키 – ‘근간’이 되는 세계관을 재구축하기 위해」 사사키 도시나오

『AERA』기사 전체 번역 : 아즈마 씨 본인이 말하길 이 글 읽고 감동 받았답니다. 아래에 번역 전문이 있습니다.

「東浩紀 ― 「おおもと」の世界観を再構築するために」 佐々木俊尚

10年12月27日付け『AERA』の「現代の肖像 東浩紀」を読み、是非この内容を韓国語話者にも伝えたいという思い、ツイッターで「韓国語に翻訳したいなぁ」とつぶやいて一日も経たないうちに、佐々木俊尚さんと東浩紀さん、そして記事が載った『AERA』編集部及び朝日新聞社の承諾を得ることができるとは夢にも思わなかったのですが、それが実現してしまい、夢心地のなか、気合入れて翻訳させていただきました。

関係者の方々、誠に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実は佐々木さんと東さんの著作は韓国にも翻訳されています。参考までに下に韓国語版へのリンクを貼っておきました。
思えば、僕のブログでは昔から東浩紀さんについて複数回に渡って紹介してきましたし、佐々木俊尚さんの著作も取り上げたことがありますので、両氏のご承諾のうえ、佐々木さんがお書きになった東さんに関する包括的な記事を翻訳して載せるようになったことに、一種の感無量的な感慨があります。
また、翻訳の過程は再読解の過程でもあり、そこで確認できた内容が、つい最近僕が韓国の雑誌に書いた文章のなかで東浩紀さんについて論じた内容と齟齬せず、むしろ共通点も見られホッとしました。佐々木さんの文章と東さんの考えが、言語の壁を超え、より多くの人たちに届く可能性を開く作業に、微力ながら携わることができて嬉しいです。この翻訳が、知らない言語の向こうに(変遷しながら)恒存する知への想像力を刺激するひとつの契機になることを願いながら。

10년12월27일자 『AERA』에서 이 기사를 읽고, 이 내용을 한국어 사용자들에게도 알리고 싶은 마음에 트위터에서 “한국어로 번역하고 싶네”라고 트윗을 올린지 하루도 안돼, 글쓴이 사사키 도시나오 씨, 본인인 아즈마 히로키씨, 그리고 기사를 실은 『AERA』 편집부 및 아사히 신문사의 승낙을 모두 받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했는데 그게 실현되었습니다. 어안이 벙벙한 상태에서 열심히 번역했습니다. 관계자 여러분 정말 감사합니다. 사사키 씨는 이 글을 쓰는데 4개월이라는 시간을 들여 10명이나 인터뷰했다고 합니다. 아즈마 씨에 관한 개괄적인 소개글 중에서도 수준급이라 판단됩니다.

큰 흐름이나 뜻 부분에서의 오역은 없으리라 자부합니다만, 번역 내용에 어색한 부분이나 혹시 틀린 부분이 있다면 꼭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수치야말로 가장 훌륭한 스승이라 믿습니다.
참고로 두 사람의 한국어 번역본을 링크해 둡니다.

※ 이 글은 글쓴이, 아즈마 씨, AERA, 그리고 아사히신문사의 허락을 받고 번역해 게재한 것입니다. 번역 허락의 조건으로, 아사히 신문사로부터 “이 글을 무단으로 다른 곳에 올리는 것을 금지한다는 알림문구를 넣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이 블로그에 있는 다른 글들은 출처만 밝히시면 퍼가셔도 상관없습니다만, 위와 같은 이유로 이 글의 경우 퍼가시려면 퍼가시는 분이 따로 글쓴이, 아즈마 씨, AERA, 그리고 아사히 신문사의 허락을 받으셔야 합니다.

아즈마 히로키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動物化するポストモダン)』韓国語版

사사키 도시나오 『전자책의 충격(電子書籍の衝撃)』韓国語版

본문(本文)

비평가, 소설가 아즈마 히로키

‘근간’이 되는 세계관을 재구축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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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도할 만큼 시대변화에 민감했던 소년은 30대가 되어서도 변화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가 답답해 초조함을 떨치지 못한다. 지(知)의 거인들을 뒤흔든 데뷔 이후 약 15년. 좌충우돌하며 끊임없이 아둥바둥거려 왔다.

지금, 인터넷이라는 무기를 손에 넣어 자기 세계관이 세상에 알려지고 있음을 이제야 실감하기 시작한다.

글쓴이 : 사사키 도시나오(佐々木俊尚)

아즈마 히로키(39)는 항상 초조한 모습이다. 초조하고, 고립무원이었다.

경력만 보면 그의 39년은 실로 화려하다. 도쿄대 대학생이었던 20살에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의 눈에 들어, 27살에 간행한 첫 저서 『존재론적, 우편적』은 비평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당시의 충격을 담당 편집자였던 신초사(新潮社)의 야노 유타카(矢野優)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80년대 뉴 아카데미즘 유행 이후 새로운 지적 스타의 등장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고조됐다. 거기에 아즈마 히로키라는 갸름한 외모의 청년이 갑자기 무대 위로 올라왔다.” 베스트셀러 『구조와 힘』으로 뉴 아카데미즘을 견인했던 아사다 아키라(浅田彰)도 아즈마를 높이 평가했다. “나는 『구조와 힘』이 드디어 완전히 과거의 것이 되었음을 인정한다.”

야노는 아즈마의 첫인상에 대해 “입을 열었다 하면 기관총. 말의 속도와 사고의 속도가 연동하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분위기는 지금도 무엇 하나 변한 게 없다. 고속 회전하는 두뇌를 지닌 아즈마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전개한 커뮤니케이션론을 바탕으로, 00년대 일본 사회에서 매우 강한 영향력을 지닌 지식인이 되었다. 오타쿠 문화를 제재로 소비구조의 변화를 그린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에서는 현대사상계의 틀에 머물지 않고 수비범위를 크게 넓혔으며, 첫번째 장편소설 『퀀텀 패밀리즈』로 바로 미시마 유키오상(三島由紀夫賞)을 수상했다 — 그런 그가 왜 초조해 하는 것일까?

저서 간행 후 급변한 몸 상태
이해받지 못한 의도

아즈마가 세상에 나온 90년대 말은 거대담론이 소멸하고 문화영역이 세분화하는 포스트모던화가 실제로 세계를 변화시킨 시대이기도 하다.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아즈마는 포스트모던화에 따른 구조전환이 지식의 세계에 미칠 변화 가능성을 논했다. 세분화된 세계에서 정보를 접하는 행위는 “발신자는 누구인가”, “누구를 향한 정보인가”, “중간에 왜곡된 것은 아닌가” 등 우편물의 배달오류와 같은 불안에 노출된다. 이를 그는 “우편적 불안”이라 불렀다. 이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옴 진리교와 같은 거짓 “거대담론”에 기대거나, 대화를 거부하고 자기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

이 불안을 반전시킬 방법은 없을까? 이런 문제의식이 『존재론적, 우편적』의 핵을 구성한다. 아즈마는 자크 데리다의 탈구축론을 구사해, 언어화되지 않은 무의식의 직접적 커뮤니케이션이 실현될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러나 아즈마의 진정한 의도는 이해받지 못했다. 포스트모던의 대세 속에서 모든 학문을 통합하고 세계 전체를 아우르는 철학은 더 이상 불가능하다. 이로 인해 90년대, 비평은 급속히 그 힘을 상실하고 작은 문화영역 안에 틀어박혔다. 아즈마는 그러한 비평계에 안티테제를 제시하는 의미에서 세계관의 결정적인 재구축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비평계의 새로운 별”이라고 추켜올릴 뿐 이해해주는 사람은 없는 현실. 우울과 초조함이 쌓여갔다. 몸 상태가 바뀔 정도였다. 피부는 거칠어지고, 컨디션도 나빠졌다. 이 시기, 군조(群像) 신인문학상 파티에서 후에 아내가 되는 소설가 호시오 사나에(ほしお さなえ)와 만나게 된다. 사나에는 “사람이 하는 말을 전혀 듣지 않는, 그러면서 엄청난 속도로 계속 말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는데, 아즈마의 강력한 공세에 7년 연하인 그와 사귀게 된다. 그런데 쾌활했던 아즈마가 저서 간행 직후부터 점점 어둡고 침울해지는 것을 느꼈다. 워낙 컸던 그 낙차에 그녀는 놀랐다.

아즈마보다 7살 어린 비평가 우노 쓰네히로(宇野常寛)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90년대 후반, 전후(戦後)라는 한 시대가 끝나고, 사회와 문화가 글로벌화 되었다. 이 변화를 비평계와 매스컴은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즈마 씨는 혼자 외로이 그런 현실과 싸우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한다.”

어릴 적부터 학교 성적은 독보적이었다. 아빠는 지루해하는 모습 한번 보이지 않고 『일본의 역사』 전20권에 푹 빠져 있던 어린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떠오른다고 하는데, 책에 열중하는 시간 외에는 활발한, 극히 평범한 소년이었다.

사춘기에 들어서면서 변하기 시작했다. 침울한 모습이었고, 때때로 초조한 표정을 감추려 하지 않았다. 친구도 적었다. 식사도 제대로 하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항상 맹렬한 기세로 말을 계속했다.

진학교(進学校 역자:일본에는 선지원 후시험 방식의 중, 고교입학전형이 있는데 ‘진학교’는 우수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을 많이 배출하는 학교를 뜻한다)로 알려진 쓰쿠바대 부속 고마바 중・고교(筑波大附属駒場中学・高校)에 진학, 고교 졸업과 동시에 도쿄대 문화 1류에 바로 입학했다. 엄마는 지금도 아들에게 “나중에 크면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었을 때의 대화를 떠올리곤 한다. 대학1학년 때의 일. “관료가 될 생각도 있니?”라고 엄마가 묻자 아들은 힘 빠진다는 듯 대답했다.

“될 수도 있겠지만 된다 해도 분명 1년 정도 일하다 그만 둘 것 같아요. 그래도 상관없다면 해 보겠지만, 그러는 거 엄마도 싫으시잖아요.”

“그럼, 사법고시라도 보면 어때?”

“합격할 때까지 얼마나 시간을 빼앗기는지 아세요? 그 시간 동안 저는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런 선택은 안해요.”

“그럼 뭐가 되고 싶은데?”

아즈마는 가슴을 펴고 “글쓰는 사람”이라고 대답했다.

“건축가는 건물을 짓고, 기술자는 전기제품을 만들고, 크리에이터는 애니메이션을 만들잖아요. 그런 사람들은 모두 뭔가를 읽어서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지식을 얻고, 그 다음에 자기도 이렇게 대응해야지 —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해요. 그런, 세상의 근간이 되는 뭔가를 저는 쓰고 싶어요.”

엄마 미키코(美紀子)는 당시의 아들을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라스콜리니코프 같았다”고 표현했다. 제정 러시아 말기, 오래된 사회를 부수고 재생시킬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를 고뇌하고, 그 철학을 실천하기 위해 전당포의 노파를 살해한다. 시대의 전환을 피부로 느끼고, 열병과 같은 전율에 사로잡혔던 라스콜리니코프. 전후 사회 말기를 맞이한 20세기 말 일본에서 시대에 민감했던 청년이 비슷한 오한을 느꼈다 해도 이상할 게 없다.

함께 놓여있는 현대사상과 애니메이션 책
영역의 횡단에 도전

10대였던 아즈마는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에 심취했었다. 냉전이 종언을 고한 그 시기, 가라타니는 오히려 마르크스의 가능성을 새롭게 논함으로써 새로운 세계관을 재구축하고자 했다. 그 거대한 작업이 “근간이 되는 뭔가를 쓰고 싶”은 아즈마의 가슴 깊은 곳에 꽂혔다.

가라타니를 실제로 만나게 된 것은 대학 2학년때, 가을에 있었던 와세다(早稲田) 축제의 강연에서였다. 그의 강연이 끝나고 질문을 한 아즈마는 가라타니의 기억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말을 하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 추상적인 내용을 유창하게 쉼없이 말한다. 젊었을 때 자기 모습과 똑같다고 생각했다.

가라타니는 그에게 자기 수업에 들어올 것을 권유했고, 아즈마는 그 동안 써두었던 손으로 쓴 논문 원고를 가지고 갔다. 소련 수용소를 테마로 한 솔제니친의 문학을 제재로, 생사의 선택이 도덕이나 윤리와는 관계없는 곳에서 결정되고 마는, “확률”이 “도덕”을 뛰어 넘어버리는 근원성에 대해 쓴 그 논문은 가라타니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그냥 공부를 잘 해서 써 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다. 비평의 센스가 있다.” 그렇게 느낀 가라타니는 이 논문을 자기가 주관하던 비평지 『비평공간(批評空間)』에 게재했다. 만나고 겨우 한달이 지났을 때의 일이다.

하지만, 아즈마는 『존재론적, 우편적』 간행 후,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가라타니 및 『비평공간』으로 상징되는 기존 비평계와 결별하고 만다. “1990년대의 문단・논단은 자기들만을 위한, 업계 내에서만 통하는 재주를 부리고 있을 뿐”, “나는 지금 그런 닫힌 공간을 무대로 말하거나 글쓰는 행위의 공허함을 통감하고 있다”(「誤状況論」2000년).

대신 그가 선택한 것은 오타쿠의 세계였다. 어릴 적부터 이 세계를 좋아했으며, 현대사상 서적과 애니메이션 책이 사이 좋게 공부방 책장을 채우고 있었다.

그 결실이 01년 저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이다. “거대 담론”의 부활이 아닌, 수없이 많은 “작은 담론들”의 집적. 이들 담론/서사를 지탱하는 세계 설정 및 캐릭터 설정이 집적된 데이터 베이스의 플랫폼. 라이트 노벨을 제재로 데이터 베이스 소비라는 새로운 개념을 고안해 내, 그를 통해 포스트모던 이후의 세계관에서 보여지는 결정적인 변화를 거센 필치로 묘사했다.

“우리는 이런 오타쿠 문화가 좋고, 바로 이곳에 본질이 있다 — 라는 사실을 제시한 최초의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한 것은 도쿄대 학생인 이리에 데쓰로(入江哲朗). 아즈마의 “문하생”격으로 그와 교류하고 있는 이리에는 “우리 세대에게 라이트 노벨과 순문학은 동격이다. 모에(萌え)계열의 상상력은 보편적 위상을 획득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걸작 또한 여기 저기에서 곡해됐다. 오타쿠 계열은 “오타쿠 세계에 은둔하는 것을 긍정해 주는 책”으로 잘못 읽었으며, 전통적인 비평계 사람들은 “아즈마가 변절했다”고 야유했다.

아즈마에게는 이런 비난 자체가 피폐의 표현일 뿐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의한 변화, 오타쿠의 발전, 세대교체. 이 세가지 변화가 나와 비평계 대립의 배후에 있었다. 지금 여기에 개입하지 않으면 문학이나 사상은 망한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더욱 앞으로 나아갔다.

라이트 노벨과 비평의 경계 위에서 활동하고 있었던 오쓰카 에이지(大塚英志)의 문예지 『신현실(新現実)』. 라이트 노벨 작가나 기술자와 함께 미래를 예측한 엔터테이먼트 작품 「기트 스테이트(ギートステイト)」. 경영자와 기술자를 모아 정보사회를 연구하는 『ised』. 문단이나 논단과는 다른 영역에서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고 믿으면서, 다양한 영역을 횡단하며 다방면에 관계를 맺으려 노력했다.

너무 성급했던 경우도 있었다. 아내 사나에는 이렇게 말한다. “자기가 자발적으로 다양한 영역에 다가가기 때문에 처음에는 잘 되는 것 같지만, 결국 상대방은 받아들여 주지 않는 거에요. 상대는 모두 전문가이고, 자기야말로 최첨단이라고 자부하고 있으니까”

처음에는 사람들이 추켜세워 주지만 바로 벽에 부딪힌다. 이를 몇번이고 반복해야 했다. “나는 그 어느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다. 단순히 지명도가 있을 뿐인, 이용해 먹기 편한 존재에 불과한 것 아닌가?”

게다가 그 때는 마침 서브컬쳐가 전통적인 주류문화에 포섭될 뻔한 시기이기도 했다. 사쿠라바 가즈키(桜庭一樹)를 비롯한 라이트 노벨 출신 작가들이 문단에서 인정받기 시작했다. 논단에서도 구닥다리 좌익을 방불케하는 ‘로스제네 논단’이 각광을 받게 된다. 거기에 새로운 철학은 없었다.

지그재그로 전진하는 수 밖에 없다
철저하게 준비된 소설

그의 첫 장편소설이 미시마상을 수상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이제야 순문학으로 되돌아 오셨네요.”, “다음은 아쿠타가와상(芥川賞 역자:일본의 순문학을 대표하는 신인상)”이라고 말들을 건넸다. 문단에 돌아왔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새로운 형태로 자신의 철학을 표현하는데 도전했을 뿐. 미시마상 증정식에서는 친구가 보내준 화환의 이름표를 주최측이 뽑아서 파기하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아즈마는 “아직도 문단의 권위는 살아있다. 그리고, 그것을 손에 쥔 사람들은 썩어 빠질대로 빠져 있다”고 내뱉었다.

아즈마의 생각은 소년 때와 거의 바뀐 게 없다. “세상의 근간이 되는 것”을 만들어 내고 싶다는 마음. 각각의 문화영역 사이에 있는 컨텍스트의 차이를 극복해, 그들을 횡적으로 관통하는 개념을 구축하고 싶다. 그러나 현대사상에서 오타쿠문화, IT, 그리고 정치로 그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그를, 세상 사람들은 기껏해야 “멀티 평론가”로만 바라 본다. 신초사의 야노는 “아즈마 씨의 궤적은 지그재그를 그린다. 사방팔방에 부딪혀, 부딪히면 각도를 바꿔서 다시 돌진한다. 영원한 초조함이 그를 지그재그로 가게 만든다”라고 평하고 있다.

아즈마의 성격문제도 있었다. 우선 주변사람들에게 “저 녀석은 실력이 있어”라고 인정받은 다음이 아니면 자기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20대 중반에 엄마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다.

“엄마가 원하는대로 도쿄대도 들어 갔고 박사학위도 받았어요. 이제 제가 하고 싶은대로 할께요.”

하지만 아즈마는 지금도 그 무엇 하나 “내가 하고 싶은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먼저 철저히 사전준비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다. 소설을 쓰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도 그랬다. 먼저 “문예지의 룰에 맞는 문학도 쓸 수 있다”는 것을 문단에 보여주기 위해 일부러 순문학적인 작품을 썼다. 실은 순문학을 지향했던 것은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골치아픈 성격이 아닐 수 없다. 아내 사나에는 아즈마의 이런 성격을 “등수 매기기 교육(偏差値教育)의 폐해”라며 웃는다.

때문에 그는 30대 후반이 돼서도 여전히 초조하다. 자기가 하고자 했던 일은 그 누구에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일까? 사나에는 당시의 아즈마를 “보고만 있어도 마음이 아파왔다”고 한다. 마침 장녀가 태어난 시기여서, 아내에게 과할 정도로 배려하며 밝아 보이려 애썼다. 하지만 실은 항상 혼자서 초조해 하고 있었다.

돌파구는 뜻하지 않는 곳에서 만들어졌다.

인터넷이다.

00년대에 들어 와 언론의 중심지는 종이매체에서 인터넷으로 조금씩 이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대두한 문화권은 블로그다. 블로그는 매스미디어와는 다른 통로를 통한 논의의 장을 마련해, 예전에는 논단지에서만 이루어지던 논의가 인터넷에서 뜨겁게 논의되었다.

트위터로 자유를 얻다
기술이 뒷받침하는 철학

그리고 트위터의 파고가 밀려왔다. 블로그 기능 중 ‘사람과 사람의 접속’ 기능을 보다 진화시킨 트위터에서는, 누가 누구와 어떠한 논의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전체상이 보다 명확히 가시화 됐다. 블로그에서는 단편적이었던 언론의 ‘장’이, 보다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는 새로운 문화영역의 생성이자, 매스컴 문화인과는 질적으로 다른 언론인들이 서로 연결망을 만들며 논의를 진행해 가는 장소의 발견이기도 했다.

트위터는 다양한 문화영역을 횡단가능케 해, 서로의 분야가 극단적으로 떨어져 있어 컨텍스트를 공유하지 못하는 사람들끼리도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기능한다. 자신의 하루하루에 대해 생동감있는 생각이나 행동을 트윗하는 것만으로 무의식의 집적이 되어 사회와의 연결망이 만들어진다. 이는 그야말로 영역을 횡단하고 관통하는 ‘데이터 베이스형 사회’라는 아즈마 철학의 구현물에 다름아니다.

트위터에서 정보 발신을 시작한 아즈마 주변에는 지금까지의 독자층과는 다른, 새로운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오타쿠와 비평이라는 양 극단의 문화권에 몸이 찟겨지는 듯한 경험을 해 왔던 아즈마에게 이는 커다란 가능성으로 느껴졌다.

“트위터를 통해 나는 자유로워지고 있다”

자신의 말이 각 영역 내의 닫힌 컨텍스트를 뛰어 넘어, 보다 먼 곳에까지 전해지기 시작했다. 테크놀러지의 진화가 아즈마의 세계관과 현실 사회를 접맥시켜 준 것이다. 아즈마의 새로운 철학은 테크놀러지의 뒷받침을 받아, 단순한 몽상에 불과했던 사유가 현실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하고 있다.

아즈마는 지금 매일 산소를 들이 마시듯 트위터를 하면서 자신의 사유나 일상생활을 지속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찬성하는 의견도 있는가 하면 반론이나 중상도 있다. 하지만 그러한 총체로서, 이미 커다란 무의식적인 플랫폼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그는 실감한다.

아즈마는 올해, 동지들과 함께 출판사 ‘컨텍쳐즈(コンテクチュアズ contectures)”를 설립해, 새로운 사상 잡지 『사상지도β』를 간행했다. 트위터에 의해 생성된 영역의 횡단 가능성을 더욱 진전시켜, 새로운 독자들에게 새로운 사상을 알려 가고, 나아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만들어 가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프로젝트가 최종적으로 성공할지 여부는 아직 잘 모른다. 트위터와 같은 테크놀로지의 진화가 무엇을 가져다줄 것인지, 그 지평도 아직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과거와는 다른 통로가 낳은 새로운 전개를 아즈마는 지금 맘껏 즐기고 있는 것 같다. 초조함은 어느새 바람에 날아가 버렸다.

19세기 말 우울했던 라스콜리니코프는 자신의 철학을 확인하기 위해 노파를 살해하는 참혹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21세기 초 아즈마 히로키는 그 우울을 극복하고 새로운 곳을 향해 나아가려 한다.

번역 : 안천

이 블로그에 있는 아즈마 히로키 관련 글들

※아즈마 히로키 등 현재 일본의 지적 상황에 관심이 있는 분은, 졸고「현대 일본의 새로운 ‘계급’을 둘러싼 지적 지형도」『세계의 문학 138호』 도 참고하시길. 아즈마의 최근 소설론에 관해서는 졸고 「’소설의 종언’ 이후의 일본 소설론 ― 하스미, 오쓰카, 아즈마」『문학과 사회 93호』2011.2.

사사키 도시나오(佐々木俊尚)

1961년생. 와세다대학 정경학부 중퇴 후, 마이니치신문사에 입사. 출판사 근무를 거쳐 프리 저널리스트. 저서로 『구글』, 『플랫(flat) 혁명』, 『블로그 논단의 탄생』, 『전자책의 충격』 등.

아즈마 히로키(東浩紀)

1971년 : 도쿄 미타카시(東京都三鷹市) 출생. 중견 건설업체 회사원인 아빠와 전업주부 엄마라는, 총중류사회의 극히 평범한 가정환경.

1982년 : 요코하마(横浜)시 아오바다이(青葉台)로 이사.

1984년 : 쓰쿠바대학 부속 고마바 중학교 입학.

1987년 : 쓰쿠바대학 부속 고마바 고등학교 입학.

1990년 : 도쿄대학 문과 1류 입학.

1991년 : 가라타니 고진・아사다 아키라가 편집하는 『비평공간』에 「솔제니친 시론」을 발표. 비평가로 데뷰.

1994년 : 도쿄대학 교양학부의 과학사・과학철학 전공 졸업. 도쿄대 대학원 진학. 『비평공간』에 자크 데리다에 관한 논문을 꾸준히 발표(~97년).

1998년 : 데리다론을 모아 『존재론적, 우편적』(신초사) 간행. 젊은 사상가의 극적인 등장이 비평계에 충격을 주었다. 소설가 호시오 사나에와 결혼.

1999년 : 도쿄대 대학원 박사과정 수료.

2000년 : 아사히 신문의 문예지 『소설 TRIPPER』에 연재하던 「오상황론(誤状況論)」에서 가라타니 고진과 아사다 아키라는 철저히 비판하고 『비평공간』과의 결별을 표명.

2001년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고단샤講談社 현대신서) 간행.

2002년 : 오쓰카 에이지가 편집하는 문예지 『신현실』 창간지에 관여.

2003년 : 국제대학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센터(GLOCOM) 주임 연구원・조교수로 취임. 고단샤의 새로운 라이트 노벨 계열 문예지 『파우스트』 창간호에 관여. 또한 이 해에 메일 매거진 「파상언론(波状言論)」의 유료발신을 시작해 05년까지 계속.

2004년 : GLOCOM에서 정보사회에 관한 연구 프로젝트 『ised』(정보사회의 윤리와 설계에 관한 학제적 연구)를 설립.

2006년 : 라이트 노벨 작가인 사쿠라자카 히로시(桜坂洋), GLOCOM 객원 연구원인 스즈키 겐(鈴木健)과 함께 『기트 스테이트』라는 공동 프로젝트를 시작. 엔터테이멘트와 사회연구의 양립을 모색.

2007년 :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2』(고단샤 현대신서) 간행.

2008년 : 기타다 아키히로(北田暁大) 도쿄대 준교수와 공동편집으로 『사상지도(思想地図)』를 NHK출판에서 간행. 연말에 트위터 시작.

2009년 : 최초의 장편 소설 『퀀텀 패밀리즈』 간행.

2010년 : 『사상지도β』 간행을 위해 출판사 ‘컨텍쳐즈’를 설립. 『퀀텀 패밀리즈』로 미시마 유키오상 수상. 아사히 신문 조간에서 「논단시평」 연재를 시작.

이 사이트의 짧은 링크  http://wp.me/pRHD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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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 by 최선호 on 2012年5月31日 - 15:33

    현재 성균관 대학교에서 장이지 교수님의 문학입문 강의를 수강하고 있는학생입니다. 이번 학기 강의에서 아즈마 히로키의 퀀텀패밀리즈에 대해 발표하게 되었는데 참고자료로써 학생들에게 배부할 자료에 포함하고 싶습니다. 게시글의 첫 부분에 웹상의 게시에 대해서 허락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따로 웹상에 게재하지 않고 참고자료로서의 활용에도 허락을 구해야할지 궁금해서 들 남깁니다. 답변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2 by aniooo on 2012年5月31日 - 15:53

      답변 메일 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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