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chive for category CRITIQUE

익명성의 구조 전환 – 붕괴하는 ‘사회의 전체상’과 데이터베이스

문예지 『오늘의 문예비평』88호(2013년 봄호)에 기고했던 글을 공개한다. 「익명성의 구조 전환」이라는 글로 인터넷 등의 등장으로 인해 새로운 정보환경 속에서 살게 되면서 우리의 기본적인 삶의 조건 중 하나인 ‘익명성’ 또한 큰 변화를 겪게 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익명성이 탄생하게 된 배경과 그 의미에 대해 쓴 글이다.

익명성의 구조 전환 – 붕괴하는 ‘사회의 전체상’과 데이터베이스

도쿄대학 박사과정  안 천

인터넷을 비롯한 새로운 정보 환경이 일상 생활 속에 깊숙히 스며들면서 우리가 사회를 경험하는 방식도 바뀌고 있다. 이 글에서는 새로운 정보 환경이 인간의 사회 인식에 어떠한 변화를 가져오고 있는지, 익명성을 화두로 살펴보려 한다. 이 문제를 사고하는데 아즈마 히로키(東浩紀)로부터 많은 자극을 받았다. 따라서, 후반부에서는 아즈마의 논의가 중심을 이루게 된다.

필자는 개인의 자유와 쌍방향적인 소통 매체가 결합되면서 인터넷 상에서 생성되는 새로운 인간 관계, 의사소통 기법, 연대의 방식에 큰 관심과 희망을 가짐과 동시에, 그 과정에서 상실되어가는 그 무엇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러했던 필자는 약 8년 전에 아즈마의 「정보자유론(情報自由論)」에 접하고 크게 매료되었다. 개인적으로 막연히 느끼고 있었던 “상실되어가는 그 무엇”을 매우 적확하게 언어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그 때 생겼던 관심으로 『일반의지2.0』의 옮긴이가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아즈마는 새로운 정보 환경으로 인해 민주주의 자체의 재구성이 필요해졌다며 『일반의지2.0』에서 ‘민주주의2.0’을 주창하고 나선다. 어쩌면 그가 내놓은 결론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의 결론에 반대하더도 그의 문제제기 자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글은 그의 결론이 아니라 ‘문제제기’에 초점을 맞추어, 새로운 정보 환경이 ‘사회의 자기 인식’에 미치는 영향을 논하도록 한다. 먼저 ‘익명성’부터 시작해 보자.

1. 무엇이 익명을 가져왔는가? Read the rest of this ent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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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일본의 ‘아시아’ 담론에 대해

올 겨울의 『창작과 비평 (154호)』에 「전후일본의 문학담론과 아시아적 시각 ― 역사적 상상력과 자본주의적 상상력」이라는 글을 썼는데, 원고를 쓰다보니 분량이 너무 길어져 앞부분을 반 이상 줄여야 했다. 오에 겐자부로와 무라카미 하루키에 초점을 맞춰, 전후 일본 문학이 동아시아를 어떻게 다루었는지를 논하는 것이 주요 논지였기 때문에 부득이한 선택이었다. 잘라내기 전의 오리지날을 앞부분만 블로그에 게재한다.  (또한, 위의 글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독해 부분은 이 블로그에 있는 「하루키와 기억의 배치 – 후쿠시마 료타를 경유해」와 겹치는 부분이 있다. )

  • 1. 탈아입구와 Asia is one.

‘아시아’라는 개념은 현재 아시아라 불리는 지역 바깥에서 도래한 것으로, 이는 ‘서양=근대’와 대립되는 성격이나 특징을 체현하는 상대에게 부여된 명칭이었다. 다시 말해 아시아는 ‘서양=근대’를 통해 재발견되는, ‘서양=근대’를 정의하기 위한 대립개념이었다. 현재 ‘동아시아’라 불리는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근대 서양과 충돌하기 전까지 조선, 중국, 일본에 스스로가 ‘동아시아’에 속한다는 인식은 없었다. 서양과 현재 동아시아라고 불리는 지역 간에 오래 전부터 교류는 있었으나, 각자의 권역에서는 각기 다른 성격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고, 각자 상이한 역사 속에서 스스로를 인식하고 있었으며, 근대 이전에는 이러한 이질적인 시간과 역사가 전면적인 충돌을 거쳐 다른 한편에 포섭되는 일 또한 없었다. ‘우리’는 서양과의 충돌을 통해 비로소 자신들이 ‘동아시아’라는 자기인식을 갖게 된다. 서양이라는 타자를 경유해 동아시아는 전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새로이 발견함과 동시에 새로운 정체성을 얻게 됐다. 이는 ‘세계사’라는 서양 중심의 독특한 역사 체계 속에 조선, 중국, 일본이 편입됐다는 것을 의미했다.

애초에 ‘세계사’라는 지적 장치가 근대화에 이르는 과정을 역사적 필연으로 여기는 세계관을 내면화하는 제도였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아시아’라는 자기인식의 수용은 위계적인 세계사의 주변부에 마련된 자기 자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뜻했다. 고로, 서양에 대한 공포가 커질수록 이 새로운 아이덴티티는 자기긍정을 위한 것이라기보다, 오히려 자기 안에서 부정적인 모습을 발견하고 이를 지양하기 위한 기제로서 기능했다. 근대화를 도모하던 시기의 슬로건이 ‘탈아입구(脱亜入欧)’였던 일본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고모리 요이치(小森陽一)는 『포스트콜로니얼』에서 이러한 일본 근대화의 특징을 ‘자기식민지화’라고 불렀다.[1] 이때 아시아는 구미의 선진성(문명)과 대립되는 후진성(야만), 그것도 자기 내부에 자리잡은 후진성을 뜻했다. 일본이 근대 서양의 가치체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후진적 요소를 ‘아시아’라는 개념에 응축시켜, 스스로를 ‘아시아적 가치를 부정하고 이를 서양 중심의 근대적 질서로 재편하는 운동체’로 정의내렸을 때, 논리 상으로는 이미 아시아에 속하는 다른 주변국을 근대화=식민화하는 주체로서의 일본, 세계사적 주체로서의 일본, 즉 제국으로서의 일본을 긍정하는 기본틀이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아시아라는 개념을 긍정적으로 갱신하려는 시도 또한 있었다. 1903년, “아시아는 하나다(Asia is one).”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동양의 이상』을 쓴 오까꾸라 뗀신(岡倉天心)은 “오늘날 아시아가 해야 할 일은 아시아적 양식을 옹호하고 회복하는 것”[2]이라며, 서양이 아닌 아시아에서 고유한 적극적 가치를 도출해 아시아 각국의 단결과 각성을 호소했다. 물론, 이는 가라타니가 말한 바와 같이 아시아 내에서 일본이 지닌 특수성을 강조하는 논리와 표리관계에 있었으며, 일본의 미술작품에서 높은 예술적 가치를 읽어낸 서양의 미적 시선(인상파), 즉 오리엔탈리즘의 시선에 의존한 가치전환이라는 일정한 한계 또한 지녔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지적・도덕적으로 열등한 타자를 미적으로 숭배하는 태도”[3] 속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와 ‘탈아입구’가 지배적 담론이던 시기에 —물질적 가치를 중시하는 서양과 정신적, 미적 가치를 중시하는 아시아라는— 이분법적 구도 속에서나마 아시아라는 개념을 긍정적으로 재구성하려 했다는 점은 평가할 부분이 있다.

  • 2. 대동아 공영권과 동아시아 담론의 재편

이처럼 근대 일본에서는 아시아를 둘러싸고 배제와 동일화의 역학이 동시에 성립했는데, 일본이 서양을 전범으로 삼아 아시아를 근대화=식민화 한다는 논리를 내세우는 한, 사회 내에서의 아시아 담론 또한 배제와 침략이 우세했다. 신흥 근대 국가를 자임하던 일본과 동아시아의 맹주였던 청나라 간에 벌어진 청일전쟁, 일본이 서양 열강으로부터 실질적인 근대국가로 승인받는 계기가 된 러일전쟁, 조선・대만・류큐의 식민지화, 연합국의 일원으로 참전한 제1차 세계대전 등을 거치면서 일본은 꾸준히 서양 제국주의를 모방해 갔고, 동시에 세계사의 중심부에 점점 가까워져 갔다.

하지만, 대외적으로는 세계사의 중심부에 가까워질수록 서양 제국주의 국가들과 갈등이 격화되었고, 대내적으로는 식민지 확대로 인해 민족을 초월한 통치 이데올로기의 필요성이 증대됐다. 또한, 1차대전 이후 서양에서 유행한 ‘서양 문명의 몰락’이라는 화두는 아시아 관련 담론을 활성화 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정황 하에서 ‘동아시아’라는 개념을 새로운 맥락 속에 재소환한 일본은, 한계에 다다른 ‘서양 근대 문명’의 극복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띤 ‘동아시아적 주체’를 확립한다는 미명 하에 ‘동아시아 협동체’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게 된다.

예를 들면 태평양 전쟁 당시, 교오또(京都)학파라 불리는 일군의 학자들은 이 전쟁을‘근대의 종언’을 실현하기 위한 전쟁, 아시아가 근대 서구 중심의 세계사에 저항해 새로운 차원의 세계사를 열기 위한 전쟁으로 위치지어, 아시아의 이름으로 이 전쟁을 정당화했다.[4] 이러한 과정을 거쳐 애초에 침략적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했던 오까꾸라의 ‘아시아는 하나다’라는 주장 등 다양한 방향성을 지녔던 일본 사회 내의 여러 아시아주의는 ‘대동아공영권’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전용돼, 결국 아시아에 관한 제담론은 제국주의 이데올로기를 구성하는 하위 담론으로 재편되고 만다.

문학 담론의 경우, 프롤레타리아 문학으로 대표되는 정통 마르크스주의나 무정부주의 계열의 작가 및 비평가들은 자본주의와 제국주의로부터 모든 인민을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으므로 자연스레 식민지 해방과 아시아 내 국제적 연대를 내세웠지만, 당국의 혹독한 탄압으로 1930년대에 프롤레타리아 문학 운동은 괴멸한다. 그 후, —일본 문예비평의 아버지라 불리는—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를 중심으로 한 ‘문학계(文學界)’ 계열과 야스다 요주로(保田與重郎)로 대표되는 ‘일본낭만파(日本浪曼派)’가 문학 담론을 이끌어 가는데, 표현의 자유가 금지된 상황에서 전개된 이들 문학 담론에는 정치적 패배주의가 짙게 베어 있었다.

프롤레타리아 문학 붕괴 이후, 문학과 사회의 접점을 재구성하기 위해 ‘사회화된 나’ 등을 논하던 고바야시는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거치며 거의 침묵하게 되고, 야스다는 모든 현상을 탈정치화해 미적 경험으로 환원하는 ‘낭만적 아이러니’ 전략을 구사했다. 야스다는 “낭만주의라는 지점에 입각해 ‘근대적 군국주의’를 비판”[5] 했다는 점에서 반체제적 성향을 지니고 있었고 실제로 당국에 의해 위험 인물로 분류됐다. 하지만, 그는 전쟁으로 인한 죽음을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긍정하는 것을 거부함과 동시에, 그러한 죽음을 탈정치화된 미적인 행위로 묘사해 낭만파 특유의 아이러니로 현실을 긍정했다. 결과적으로 보자면 발터 벤야민이 말했던 ‘정치의 미학화’의 변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일본낭만파적 사유의 계보를 패전 후에 계승하게 되는 작가가, 『금각사』와 같은 완성도 높은 심미적 소설을 써서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는 한편, 자위대 쿠테타를 호소하고 할복 자살을 하게 되는 미시마 유키오(三島由紀夫)이다.


[1] 고모리 요이치, 『포스트 콜로니얼』, 삼인, 2002.

[2] Kazuo Okakura, The Ideals of the East with special reffernce to the art of Japan, London, John Murray, 1903.p.240.

[3] 柄谷行人, 『定本 柄谷行人集 ネーションと美学』, 岩波書店, 2004, p.152.

[4] 廣松渉, 『<近代の超克>論』, 講談社, 1989.

[5] 松本健一, 『竹内好論』, 岩波書店, 2005,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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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와 기억의 배치-후쿠시마 료타를 경유해★村上春樹と記憶の配置―福嶋亮大を経由して

후쿠시마 료타(福嶋亮大)가 『신화가 사유한다(神話が考える)』(2010)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 논하고 있는 부분이 흥미롭다. 좋은 비평이 그러하듯 후쿠시마의 하루키 독해 속에는 하루키를 읽기 위한 새로운 관점과 비평가 자신의 사고 유형이 균형 있게 담겨 있다.

먼저 후쿠시마 자신이 어떠한 생각을 지니고 있는지, 과하게 추상적인 면이 있으나 소개해 보도록 한다.

1.

“고전적인 사고 방식에 따르면 확고한 현실과 황당무개한 허구, 혹은 거짓에 불과한 현세와 진실된 초월 세계가 대립한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이러한 대립은 서서히 힘을 잃어 다른 주제로 대체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현실이든 허구이든 정밀한 시뮬레이션을 통해 리얼리티를 농축하고 수렴하는 것이 새로운 과제로 부상한다.”(26쪽)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서로의 느낌이나 감정을 스스로가 납득할 수 있는 형태로 공유하는 것이다. 그러한 공유를 가능하게 해주는 참조항이 현실인지 허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때때로 현실보다는 허구인 소설이나 영화를 통해서 비로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고 느끼지 않던가? 현실에서 리얼리티를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가 하면, 허구 속에서 비로소 획득되는 리얼리티도 있다. 우리의 삶을 의미있는 것으로 채우는데 있어서 리얼리티가 없어서는 안될 요소가 되고 있다면, 라는 현시/허구 라는구분보다 리얼리티의 유무가 점점 더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이다.

2.

“우리는 패턴화 된 것은 인식할 수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것은 처음부터 인식하지 못한다.”(1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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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없는 자들의 영위인 역사가 특정 사건들에 의해 대체되는 현상에 대해

실제 역사의 대부분은 이름없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영위에 의해 구성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역사를 논하는 언어들은 ―적어도 그 도입부에서는― 사회적・정치적 사건 주변에 치우쳐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이 현상은 무한에 가까운 세상에 관한 정보들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인류가 무의식 중에 갈고 닦아온 인지능력의 특성에 기인한다고 치부할 수 만은 없는 측면, 즉 특정 사회에 있어서 어떠한 사건을 ‘사회적 규모의 경험’으로 승인할지 여부를 둘러싼 역학관계가 작동하는 측면이 있으며, 나아가 ‘사회적 사건’으로서의 위상을 획득한 사건은 그 위상획득의 결과, 그 사회의 특성을 표상하고 체현하는 기호적 기능을 부여받게 된다.

또한, 이러한 기능을 지닌 사회적 기호는 재귀적(reflexive) 작용에 의해 그 사회 전반에 관한 상징투쟁의 전장 역할을 겸하게 된다. 즉, 사건 자체는 역사의 한 단편에 불과하지만 그 사건이 ‘사회적 규모의 경험’으로 한번 위치지워지면, 그 사건을 둘러싼 담론의 지형은 역사를 상징하는 기능을 갖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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通時的に長期的な権力集中は、共時的な中央集権と同じく変化適応力の低下をもたらす

今日は日本の官僚について思いついたことを一つ。昔、ツイートで日本が近代化に成功し、朝鮮が失敗した理由の 一つとして徳川幕府=地方分権=多様性があり変化に適応/朝鮮=中央集権=権力代替する勢力成長困難、という仮説を提示した。

これは共時的に権力分散が大変化に適応しやすいという話だったが、実は通時的にも権力分散が変化に適応しやすく、権力集中は変化適応力を落とすと思 う。すなわち、政権交代がある程度起こる方が変化への適応力が高く、反対に長期間政権交代が起きなかった社会や行政システムは相対的に変化にしくいのでは なかろうか。

政権が長続きしなくても日本社会に大きな不安が見られない理由の一つは、信頼に値する官僚制度が確立していることを挙げられる。だが、この官僚制度 は長きにわたる自民党政権のもとで堅固なシステムを作りあげた。残念ながらこの「堅固な」とは、内部的な最適化を果たしたという意味であるため、外部の変 化にはむしろ適応しにくい。通時的に長い間政権交代がなかったため、官僚が自己最適化を果たし、現状においては政権交代がされても、その自己最適化論理か ら中々抜け出せずにいる。それで、結局は変化に適応するための転換ができない。そのような見方もできるのではないか。

日本の官僚がいかに誠実であり、真摯に自分の仕事に取り組んでいるか知っているゆえに、官僚システムの変化困難性は歴史的、構造的原因に起因するは ずであり、この通時的権力集中(長きにわたる政権交代の不在)も重要な歴史的・構造的ファクターとして現在を規定しているように思えてならな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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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異文化の結節点であったことと『ハングルの誕生』―ひとつの仮説/노마 히데키『한글의 탄생』

野間秀樹の『ハングルの誕生』(平凡社2010)を読んで、その過程で得た知識と自分がもともと持っていた考えを合わせて、ハングルの誕生についての抽象的な仮説を一つ提示したい。以下、韓国語での簡単な説明のあと、日本語での説明が続く。平凡社の紹介ホームページはこちら

노마 히데키의 『한글의 탄생』을 읽다. 한글에 대해 잘 모르는 일본 사람들에게, 한글이라는 문자체계가 음성을 시각적으로 재현하는데 있어 얼마나 합리적인 문자체계인지를, 일본문자나 알파벳 등과의 비교를 통해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는 책이다. 이러한 언어학적인 설명 다음에,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이나 집현전에 대한 설명, 세종의 ‘훈민정음’이 주시경의 ‘한글’이 되는 과정, 한글 형태(폰트라고나 할까?)의 변천 등에 대한 개괄 등이 그 내용이다.

한마디로, 한글의 역사에 대해 배경 지식이 있는 한국사람들에겐 크게 새로울 지식은 없을 듯.  사실, 한글과 같은 합리적 음성표기법이 15세기 조선에서 탄생하게 된 역사적, 구조적 원인에 대해 많은 내용이 할애되어 있을 것을 기대하고 산 것인데, 기대에 못미쳐 안타깝다.

당시 한반도가 히라가나-가타가나와 같은 ‘음절문자문화’와 알파벳에서 파생된 몽고문자 등의 ‘단음문자문화’, 그리고 ‘한자문화’가 교차되는 지역에 있었다는 설명이 도움이 되긴 했지만, 만족스럽진 못했다. 보다 자세한 설명들은 죄송하지만 일본어로…  ※이 글 포스팅한 걸 보시고, 민음사의 @bookedit 님께서 ‘인터넷 번역기를 이용한 일어번역’이라는 아이디어를 제공해주셔서(감사합니다!) 일본어 밑에, 똑같은 내용을 네이버 번역기를 이용해 한국어로 번역한 것을 붙여두었다.

1.本についての感想

ハングルを様々な角度で立体的に説明している本。

ハングルの言語学的特徴を、他の文字との詳しい比較を伴いながら、わかりやすく説明しているし、その誕生に携わった人たちについても概観を行っていて、丁寧に説明しようと努めている。また、ハングルが作られたとき、漢字だけを文字として用いてきた既成の知識階級が、いかにハングルに対して敵対的であったかなど、ハングルについての基本知識があまりなかった人たちにとっての目新しい情報も多く入っている。

しかし、残念ながら、思ったほど面白くなかった。
でも、急いでつけ加えておくが、 Read the rest of this entr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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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반으로서의 글쓰기

1. 번역과 반역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전환시키는 작업에는 ‘통역’이라는 말이 쓰이고, ‘번역’이라는 말도 쓰인다. 통상 음성기호를 전환시키는 작업에 ‘통역’이라는 말을, 다른 한편 문자기호를 전환시키는 작업에 ‘번역’이라는 말을 적용한다.

이 중에 유독 번역에는 ‘반역’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어찌하여 통역이 아닌 번역에 ‘반역’이라는 위험스러운 異名이 따라다니는 걸까. 가장 쉬운 설명으로 추측 가능한 것은 ‘통역’보다는 ‘번역’이 ‘반역’과 비슷한 발음을 지니고 있다는 점일게다. 또 하나로는, 통역이 ‘그 자리’에서의 일회성에 그치는 순간적인 사건임에 비해 번역은 두고두고 반복해서 검증가능한 상대적 지속성을 지녔다는 점을 염두에 두었을 때, 번역이 지니기 쉬운 ‘반역성’의 상당부분을 차지할 ‘오역’이 쉽게 눈에 띤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어찌보면 글쓰기 자체가 ‘배반’을 그 운명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철학적으로 철저히 사유한 결과 중에 하나로 자크 데리다가 말한 ‘에크리튀르’를 꼽을 수 있다.

2. 글쓰기와 ‘나’

예를 들어, 내가 내적인 화해를 도무지 이끌어낼 수 없는 ‘의식이라는 병’으로부터 찰나적이나마 해방되고 싶다는 – 이기적이고 지극히 개인적인 이유로 인해 인터넷이라는 매체에 글을 남긴다고 하자. 물론, 그 매체가 ‘인터넷’에 한정될 이유는 없다. 자신의 물질적인 소유물로서의 ‘일기장’이라도 상관없다.

혹자는 ‘인터넷’의 경우 그 매체의 개방성, 누구라도 그 글에 접근가능하다는 점 -타자에 의한 독해가능성-을 무의식적으로 염두에 둘 수 밖에 없기에 ‘일기장’과 근본적인 차이를 지닐 수 밖에 없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 ‘근본적’이고자 한다면 ‘일기장’과 ‘인터넷’의 차이는 극복가능하다. 글로 쓰여진 것인 한, 그것은 잠재적으로 타자의 시선에 노출될 가능성을 함축하고 있으며, 진정 ‘근본적’이라면 미래의 ‘나’ 또한 그러한 타자에 속할 것이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있는 ‘나’와 나중에 이 글을 읽게 될 ‘나’ 사이의 동일성을 신빙성있는 것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는 그다지 많지 않다.

글쓰기가 ‘배반’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바로 이러한 ‘나’의 동일성을 믿기 힘들기 때문이다. 현재의 나는 무언가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 혹은 표현하지 않을 수 없는 그 무엇을 짊어지고 있기에 여기에 글을 뱉어내고 있다. 하지만, 지금 뱉어낸 글들을 순간적으로 읽고 있는 ‘나’는, 여기에 쓰여져 있는 글들이 결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그 무엇을 충분히 담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의혹에 사로잡혀 계속해서 보충적인 글을 써 나가게 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나와 ‘나’ 사이의 반복운동에 과연 종착점이란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글쓰기는 그것이 실현되는 순간, 즉 가시적인 ‘글’로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그 글을 뱉어낸 ‘주체’를 배반한다. 글쓰기가 ‘반역’일 수 밖에 없는 이유 중에 하나는 여기에 있다.

3. 반역에 대한 반역

하지만, 소위 이러한 ‘에크리튀르’적인 설명을  글이라는 매체를 통해 그 어떤 독자를 향해 하고자 했을 때, 그러한 ‘주체’는 그 어느 때보다 확신범적인 불안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글쓰기는 반역일 수 밖에 없다”는 ‘진리’ 그 자체도 이미-항상 배반당할 위기에 처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아포리즘을 벗어나는 길은 이러한 문제틀 자체를 무효화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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